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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곡’ 가수 현미 ‘노란 샤쓰의 사나이’ "결혼 남편 이봉조 사망원인 아들 나이 노사연 한상진 종교 가족"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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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곡’ 가수 현미 ‘노란 샤쓰의 사나이’ "결혼 남편 이봉조 사망원인 아들 나이 노사연 한상진 종교 가족" 프로필

가수 현미 나이는...'두집 살림' 남편 故이봉조 누구? 

[사진=TV조선 방송 캡처]

 ‘불후의 명곡’ 2022년 3월 12일 미리보기 / 18:10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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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대표 여가수 현미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고 합니다.
23일 방송된 KBS 1TV '아침마당'의 '슬기로운 목요일'에는 평야 출신인 현미가 출연해 '그때 그 음식'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날 방송에서 현미는 "이북은 만두가 유명하다. 명절 때 만두 크게 해서 3개씩 그릇에 담아주면 빨리 먹든 늦게 먹든 관계가 없었다"며 "지금도 만둣국을 자주 먹는다. 옛날 추억이 있다. 우리 때는 먹을 때가 귀했다. 지금 행복한 삶에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현미는 1938년생으로 올해 83세다. 평안남도 평양 출신으로 6.25 전쟁을 겪은 세대다. 미8군 무용수로 활동하던 현미는 1962년 '밤안개'를 발표하며 연예계에 데뷔해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 없이', '무작정 좋았어요', '몽땅 내 사랑' 등 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1966년 영화 '워커힐에서 만납시다'에 출연해 영화배우로도 활동했습니다.  
현미의 히트곡은 대부분 남편인 故이봉조 작곡가가 만든 노래다. 현미와 결혼할 당시 이봉조 작곡가는 아이가 있는 유부남이었던 사실이 공개돼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현미는 과거 한 현미는 과거 한 프로그램에서 "6.25직후라 호적이 없었다. 23살때 임신을 했다. 결혼식 날짜를 잡았는데 계속 미루더라"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이어 "(이봉조의)부인이 미8군에 나를 찾아왔다. 딸이 둘이나 있다고 했다"며 "이후 이혼서류를 가져와서 믿고 결혼했지만 나를 놓치기 싫어 가짜로 만든거였다"고 이봉조가 두집 살림을 해왔음을 털어놔 안타까움을 안긴 바 있습니다.

 

가수 현미 프로필
현미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1957년 미8군 무용수로 처음 활동하였고 1962년 정식 가수 데뷔하였으며 1966년 영화 《워커힐에서 만납시다》의 단역으로 영화배우 데뷔하였다. 현재 거주지는 서울특별시이다. 위키백과
출생: 1937년 1월 28일 (85세), 북한 평양 직할시
본명: 김명선
형제자매: 김명옥, 김화선, 김명희, Kim Myung-soon, Kim Myung-joon, 김명자, 김길자
조카: 노사연
조카: 한상진
자녀: 고니
분류 한국 여가수트로트 가수강동군 출신 인물1937년 출생1957년 데뷔덕성여자대학교 출신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의 교회 신자실향민
가족 슬하 2남[5], 둘째 며느리 원준희
혈액형 O형[4]
조카 노사연, 한상진[6]
종교 개신교(그리스도의 교회)
데뷔 1957년 미 8군 번안곡 O Danny Boy
재즈풍 목소리로 한국형 팝을 선도했던 인물로, 1957년부터 현시스터즈로 데뷔해 활동하기 시작해 1962년 <밤안개>[7]로 정식 1집을 발매해 많은 인기를 얻었다. 60년대 주로 이봉조의 곡을 부르며 최희준, 한명숙, 이금희, 박재란, 위키리 등과 함께 60년대 톱가수로 활동하여 음악계에서는 이미자, 패티 김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평가를 받는 대가수이다. [8]
작곡가 이봉조와의 연인관계로 유명했으나, 어느 시기 이후에 이 둘의 관계가 파경을 맞으면서 사실혼이었다는 사실로 밝혀졌다. 현미 측은 이봉조와의 만날 당시부터 이봉조에게 자녀가 있다는 사실은 몰랐으나, 임신 후 결혼까지 약속한 이후에 본처가 찾아와서 알았다고 한다. 실제로 결혼을 약속하고 시댁에도 찾아갔는데, 시어머니라는 분이 참 복스럽게 이쁘게 생겼다면서 가족들 모두가 현미를 좋아해줬다고 한다. 이봉조는 이혼서류까지 보여주며 현미를 안심시키고 살림을 차렸으나 이후에 본처와의 자녀와 자신과의 자녀들의 나이차이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두 집 살림을 해왔다는 사실을 알고 관계를 정리하자고 요구했다고한다. 그러자 이봉조가 같이 죽자며 칼을 들고 쫓아왔다고 한다. 분위기를 봐서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쳐 엄앵란 집으로 피하자 그 곳까지 쫓아왔는데 이 과정에서 신성일과의 물리적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현미가 관계를 정리하고 본처에게 돌아갈 것을 요구하고 몇년간 왕래가 없었다고 한다.

이후 시누이가 이봉조의 사망 직전 건강이 악화되어 꼭 한번만 찾아가 봐달라는 연락을 받고 현미가 찾아왔는데 이가 다 빠지고 상당히 심각한 상태임에도 본처와의 재결합을 거부하고, 틀니를 낀 상태로 색소폰을 부는 모습에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서로 오열했다고 한다. 그 결과 다시 재결합을 약속했는데 재결합 직전에 돌연사로 사망했다고 한다. 생전에 이봉조는 본처와의 합장을 원하지 않았다고한다. 실제로 이봉조측의 가족들이 평생 이봉조가 본처와의 합장을 원하지 않았다며 합장을 거부하자, 본처 자식들의 요구와 현미측의 배려로 합장했다고 한다.
노사봉, 노사연, 배우 한상진의 이모이다. 1980년대 후반에 '사랑은 유리같은 것'으로 유명한 인기 가수였던 원준희는 현미의 둘째 며느리. 어르신도 이런 어르신이 없다. 더군다나 현미는 나이[9]는 말할 것도 없고 연예인으로서도 최불암보다 선배다.[10] 한국 가요계 레전드 패티김보다도 언니이자 선배이다. 패티 김을 '혜자'(패티 김의 본명)라고 대놓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가수가 현미라고 한다.[11] 21세기가 된 후, 그녀가 연예계에서 언니라고 불러 본 사람은 엄앵란 밖에 없다.[12]

가수 현미 리즈

‘불후의 명곡’ 가수 현미 ‘노란 샤쓰의 사나이’ "결혼 남편 이봉조 사망원인 아들 나이 노사연 한상진 종교 가족"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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