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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곡’ 심수봉, 근황 공개 "전남편 이혼 자녀 나이 리즈 실제키 박정희 여자들 신재순 소속사"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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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곡’ 심수봉, 근황 공개 "전남편 이혼 자녀 나이 리즈 실제키 박정희 여자들 신재순 소속사" 프로필

불후의 명곡 510회 출연자 정보 6월 5일 / 17:55 방송 2011년 6월 4일! 
첫 방송을 시작으로 10주년을 맞이한  <불후의 명곡>! 
<불후의 명곡>을 빛낸  '영광의 기록'이 담긴 무대부터  스페셜 컬래버레이션까지! 
10년의 역사를  총망라하는 스페셜 쇼! 
<불후의 명곡 10주년 특집 - 10년을 노래하다> 
영광의 기록! 10년 역사의 시작점! <1대 전설>  
모든 출연 가수들의 로망! <최다 트로피> 
깨지지 않는 기록! <최고 득점>  
무대 위의 승부사! <최다 올킬> 
시청자가 준 사랑의 증거! <최다 출연> 
불후의 자랑스러운 보물! <슈퍼 루키> 
전무후무한 새 역사! <왕중왕전 그랜드슬램> 
스페셜 스테이지!  불후의 명곡을 통해 어마어마한 화제를 모은  <화제의 주인공> 
10주년을 맞아 특별히 준비한  <스페셜 컬래버레이션> 
<불후의 명곡> 10살 생일잔치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심수봉, 박정희 시해 현장 있었다고 피의자 조사…정신병원에 갇히기도”

채널A ‘풍문으로 들었쇼‘ 캡처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와 관련해 가수 심수봉 씨의 비화가 공개됐습니다.

9일 방송된 채널A ‘풍문으로 들었쇼’에서는 1979년 10월 26일 박 전 대통령 시해에 관해 출연진이 이야기를 나눴다고 합니다.

강일홍 기자는 박 전 대통령 시해 현장이 벌어진 연회장에 “故 차지철 경호실장, 심수봉, 대학생 신재순, 故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동석했다”고 말했습니다.

강일홍 기자는 “처음에 심수봉과 차지철 경호실장이 노래를 먼저 불렀다고 한다”며 “그다음에는 심수봉의 기타 반주를 통해 신재순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고 전했습니다.

정영진 편집장은 “그때 신재순이 부른 노래는 ’사랑해’다”며 “후렴구인 ‘예~예~예’ 이 부분을 따라 부를 정도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좋아했다고 한다.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더라”고 했습니다.

강일홍 기자는 “심수봉 회고록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분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자식 넌 너무 건방져’라며 차지철 경호실장을 향해 총을 쐈다. 그래서 난장판이 됐다”고 했습니다.

정영진 편집장은 “당시 김재규 부장이 먼저 차지철 실장에게 한 발을 쏘고. 차지철이 화장실로 갔다. 그리고 또 다른 한발을 박정희 전 대통령에 오른쪽 가슴에 쐈다. 그리고 세 번째 쏘려고 할 때 격발이 안돼서 김재규가 나가 박선호 과장에게 총을 바꿔서 받고 다시 들어와 차지철 한 발, 또 다른 한발을 신재순 품에 있던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은정 기자는 “심수봉 역시 목숨이 위태로웠다고 한다”며 “김재규 부장이 심수봉에게도 총구를 겨눴지만 총알이 없어 살았다고 한다. 이후 심수봉은 신재순과 다른 방에 피신해 있다가 밤 11시에 귀가했다고 한다”고 했습니다.

강일홍 기자는 “심수봉은 당시 대통령 시해 현장에 있었던 이유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아 힘들었다고 한다”고 전했습니다.

정영진 편집장은 “조사 과정에서 심수봉에게도 힘든 일이 닥쳤다”며 “귀신에 사로잡혔다는 누명으로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정신병원에 한 달 동안 갇혀있었다. 수면제도 먹을 수밖에 없었고 강제적으로 약 투여까지. ‘정신 멀쩡하다’고 해도 그런 상황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들은 개그우먼 김지민은 “눈앞에서 대통령이 서거하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감당이 안 됐을 거 같다. 앞으로의 삶들이 막막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하은정 기자는 “실제로 심수봉은 그때의 트라우마로 한동안 기타를 잡지 않았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불후의 명곡’ 가수 심수봉 프로필
심수봉, 1955년 7월 11일은 대한민국의 1세대 여자 싱어송라이터이다. 위키백과
출생: 1955년 7월 11일 (심수봉 나이 65세), 심수봉 고향 서산시
심수봉 본명: Sim Min-kyung
배우자: 심수봉 두번째 남편 킴 호 경 (심수봉 재혼 1993년–), 
심수봉 첫번째 남편 파크 진 섭 (1986년–1992년)
앨범: 비나리, 내 삶은 빛나기 시작했다, 꽃, 헤세드 - 사랑의 언약, 더보기
자녀: 박성희
혈액형 O형
가족 아버지 심재덕, 어머니 장형복의 무남독녀[2]
직업 가수, 아티스트
자녀 자녀 슬하 2남 1녀[3][4]
1955년 7월 11일에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5] 본명은 '심민경'이었지만, 가수로써 성공하려면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권유로 어릴 때 스님이 지어준 법명인 심수봉으로 예명을 정했다. 관련기사
그녀의 집안은 증조부 때부터 음악을 했던 집안이었고, 아버지, 큰아버지, 고모 등도 모두 음악을 했을 정도로 후덜덜한 음악가 집안이었다. 이런 집안의 환경 속에서 그녀도 음악인의 삶을 걷게 된다. 주 전공은 재즈였는데, 최고의 음악가들만 설수있다는 미8군 무대에 로큰롤 밴드 "논스톱"의 드러머로 서기도 했었다. 그녀를 트로트 가수로만 아는 사람들은 그녀가 드럼을 치는 모습에 깜놀하기도 했는데 이런 뒷배경이 있었기 때문. '드럼을 치는 여성 보컬리스트'로 카펜터즈의 캐런 카펜터와 함께 이야기되기도 한다.
운명의 1979년 10월 26일, 심수봉은 모델 신재순과 함께 궁정동 안가에서 열린 박정희의 술자리에 불려갔다. 이날도 평소와 별 다를 게 없었을 술자리였을지도 몰랐으나... 김재규가 차지철과 박정희를 총살하면서 엄청난 사태가 일어났다.
10.26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두한 심수봉(모자를 쓴 여자). 오른쪽은 함께 증인으로 출두한 신재순.
1957년 10월 15일생으로 10.26 사건 당시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다니던 22세 여성이었다. 박근혜보다 5살 연하, 박지만보다 불과 1살 연상이었다. 그러니까 나이상으로는 박정희에게 막내딸 같은 여자나 다름없었다. 박정희와는 나이상으로는 40살 차이. 그러나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생 2학년때 이미 부자집 아들과 결혼해 딸까지 낳았다가 이혼한 이혼녀 신분으로[1] 한양대 연극영화과 3학년에 적을 둔 채 관련 업종에서 활동하다 어느 날 궁정동 박정희의 술자리에 불려가게 되었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합동수사본부가 박정희 암살 사건을 강도 높게 조사하면서 그녀도 조사를 받았고 현장에 있던 것 뿐 이었던지라 무혐의로 풀려났으나 시대는 그녀를 파란으로 몰고 갔다. 방송 활동이 금지되고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던 그녀는 잠시 영화배우로 활동해 "아낌없이 바쳤는데"라는 영화의 주연으로 캐스팅되기도 했지만 가수로서는 활동할 수 없었다. 더구나 이 와중에 '한도사' 혹은 '심령도사'라고 불리는 한기석과 연인이 되어서 동거하면서 아들을 낳기도 했다. 70년대말 80년대초에 동거에 혼외자였으니 연예계 활동은 거의 못했다고 봐도 된다. 한기석과 이별한 이후에야 밤무대 활동을 재개할 정도의 칩거생활.
1984년이 되서야 방송 활동 금지가 풀리면서 그녀의 또 다른 대표 곡인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가 히트 치면서 다시 재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듬해 발표한 《무궁화》가 국민을 선동한다는 어이없는 이유로[9] 방송된 지 단 하룻 만에 금지곡이 되는 사태를 겪기도 했다. 1987년에는 "사랑밖엔 난 몰라"가 히트했고 이후 꾸준히 콘서트와 음반 발매를 하면서 지금까지 가수로서 활동 중이다.
1993년 SBS 주병진 쇼에 출연한 영상을 보면, 박정희에 대해서는 좋게 묘사하지만 본인이 이래저래 수모를 겪은 시절의 대통령인 전두환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언급을 강하게 하는 편이다.[10]
제4공화국(드라마)에선 정은수가 연기했다.
제5공화국(드라마)에선 신동미가 연기했다.
코리아게이트(드라마)에선 권은아가 연기했다.
MBC 스페셜 - 1979 : 1부 나는 저항한다에서는 요요미가 연기했다.
2019년 마지막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불꽃 튀는 경쟁!
왕중왕전 황금 트로피를 사수하라!
12월 14일 토요일 오후 6시 5분! 
‘불후의 명곡’ 놓치지 마세요!    

심수봉 리즈 시절 사진

‘불후의 명곡’ 심수봉, 근황 공개 "전남편 이혼 자녀 나이 리즈 실제키 박정희 여자들 신재순 소속사"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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