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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극장

영광 미래의원병원 정해영 원장 프로필, 인간극장 이상한 진료실 어머니 박순화 약사 물리치료 박재중 응급구조 박영희 “나이 학력 위치 주소 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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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미래의원병원 정해영 원장 프로필, 인간극장 해영 씨의 이상한 진료실 어머니 박순화 약사 물리치료사 박재중 응급구조사 박영희 “나이 학력 병원 위치 주소 전화번호”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 신남로 186-29에 위치한 영광미래의원의 원장입니다.  어머니 박순화 약사 
물리치료사, 박재중  응급구조사 박영희
영광미래의원 정해영 원장은 아내와 아들


영광미래의원병원,의원
전화 061-352-1475
주소 전남 영광군 영광읍 신남로 186-29지번신하리 4-5
영업시간 진료 중13:00에 진료 종료
서울대를 나와 외국계 IT대기업에 다니다가 키워주신 할머니의 임종을 맞았고, 슬픔을 이기기 위해 서른이라는 늦은 나이에 다시 의과대학에 진학

원장 at 미래의원
College

Studied 노어노문학과 at 서울대학교
Class of 1994

Studied 내과 at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Chonnam National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
Class of 2004
High school

Went to 광덕고등학교
Class of 1988

정해영 씨의 이상한 진료실
방송일 : 2025년 1월 27일(월) ~ 1월 31일(금) / 오전 7:50~8:25
방송매체 : KBS1-TV
보도자료 문의 : 김지영 취재작가  (02-782-8222)


전라남도 영광의 한 재래시장, 그 옆의 작은 내과 병원.
동이 트지도 않은 새벽부터 병원의 문을 여는 건 다름 아닌 환자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침대에 불을 넣고, 온풍기도 켜고, 찜질팩도 정리한다.
이뿐이 아니다. 동짓날엔 팥죽이, 김장철엔 갓 담근 김치까지...수시로 먹을 것들이 병원 진료실로 몰려든다.
환자와 의사가 스스럼없이 대하고 툭하면 떡이나 과일을 나눠 먹는 병원,
대체 이 시골병원엔 어떤 이야기가 있는 걸까? 
원장 해영 씨(54)는 오는 환자들을 ‘엄마, 아버지, 이모, 삼촌’으로 부른다.
가운도 벗고, 반말도 섞어가며 다정다감하게 진료를 보는 의사, 해영씨.
그는 진료실에 온 환자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만 해도 
병의 반은 치료된다고 믿는 의사다.
해영 씨의 이런 철학은 9년 전, 
위암으로 크게 아프면서 겪었던 환자로서의 경험 때문이라는데...
환자가 되어 수술대에 오른 순간, 인생의 의미에 대한 고뇌가 찾아왔다.
‘내가 이 세상에 왔다 가는 이유가 뭘까?’
그 고민의 답은 ‘나를 기억해줄 사람들은 모두 병원에 있었다.’ 였다
그렇게 해영 씨(54)는 수술한 지 일주일 만에 병원으로 돌아갔다. 
‘물건도, 사람도, 중고만 좋아한다'는 해영 씨, 그에겐 오래된 직원들이 있다.
12년째 근무 중인 물리치료사 재중 씨(51)는 장비를 만질 때 반복되는 마찰 때문에, 
왼손에 혹처럼 큰 굳은살이 생겼을 정도.
부모님을 따라 화순으로 귀촌한 영희 씨(40)는 
8년째 매일 한 시간 반을 달려 병원에 출근한다.
‘오늘은 어떤 환자가 반겨줄까?’ 
출근길이 ‘소풍 가는 날’인 것 같이 느껴진다는데!
그리고 얼마 전 합류한 데스크 직원 김 설 씨(35)까지.
이들은 매일 점심, 환자들이 가져온 반찬으로 밥을 지어 먹는 끈끈한 ‘한 식구들’
‘3분 진료’가 대세처럼 된 진료 현실.
분명 해영 씨(54)의 내과 병원은 조금 ‘이상한’ 곳이다. 
어젯밤 꿨던 꿈 얘기를 늘어놓는 할머니 환자부터, 대놓고 엄살 부리는 환자까지. 
진료실을 놀이터나, 사랑방으로 여기고 드나드는 이들에게, 
이곳은 아프지 않아도 가고 싶은 특별한 곳이라는데...
아무 때나 들러 커피 한 잔 마시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병원.
전남 영광의 조금 ‘이상한’ 진료실로 가보자!


# 좀 '이상한' 진료실
환자 가까이 가겠다며 전라남도 영광 시장 통에
병원을 연 의사 정해영 씨(54)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환자들은 병원이 내 집 같다면서
팥죽이야, 동치미야, 김장철이 되면 김치까지
싸 들고 병원에 온다.
병원이라기엔 좀 '이상한' 진료실 풍경~
해영 씨는 흰 가운도 입지 않고
반말도 섞어가며 환자들을 '엄마', '아버지', '삼촌', '이모'라 부른다.
의사가 먼저 권위나 엄숙함을 벗어버리니
환자들도 자연히 진료실이 편해졌단다.
커피 한 잔 마시며 아무 때나 쉬어갈 수 있는 병원
해영 씨(54)는 그런 친근한 병원을 꿈꿔왔다.
어디가 아픈지 제대로 들어주기만 해도
병의 절반은 낫는다고 생각하는 해영 씨.
전날 밤 꿈 이야기부터 농사 이야기까지
의사 앞에 앉은 할머니 환자들의 수다가 끊이지 않는데...
그뿐이 아니다. 병원 구조도 좀 특이하다.
환자 대부분이 연세 드신 분들이라
앉았다 일어나는 데도 시간이 한참 걸리는데
그걸 배려해 해영 씨는 양쪽으로 침대를 두고 환자를 보고 있다.
오른쪽 환자는 천천히 일어나 옷 입고 나가고
그동안 왼쪽 환자 문진을 시작하는 것.
이러니 환자는 마음도 몸도 한결 더 편해졌다.


# 내가 환자가 되어보니...
9년 전, 평소와 같이 병원에 출근하던 날
몸에 이상한 증상이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해영 씨(54)는 조기 위암을 진단받았고
위의 3분의 2 정도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생사가 오갈 정도로 아팠던 해영 씨(54).
처음엔 가족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감당하려 했다.
외로운 결심으로 수술대에 오르니 드는 생각
'내가 이 세상에 왔다 가는 이유가 뭘까?'
가족도, 친척도 그 순간엔 위로가 되지 않았다.
오롯이 혼자 견뎌내야 했던 시간.
해영 씨(54)는 수술 후 일주일 만에
곧바로 병원으로 복귀했다.
내가 필요한 이들은 환자들이었고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은 바로, 병원 진료실이었다.
아파본 의사, 해영 씨는 그날 이후
환자를 만나면 손 한 번 더 잡아드리고
하소연도, 어리광도 다 들어주려고 노력한다.
병을 고치는 것보다 마음을 먼저 어루만지는 게 
더 값진 치료라는 걸, 환자가 되고 나서 깨달았다는 해영 씨.
그의 소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해영 씨에겐 '천군만마'가 있다?!
해영 씨(54)의 가족은
아버지부터 막내 여동생까지, 모두 의사.
한집에 의사만 넷이라는데...
그중 서울대를 졸업하고
외국계 IT 회사에서 일했던 해영 씨.
그는 서른하나에 의대에 입학해 마흔에 개원한 늦깎이 의사다.
해영 씨가 집 가까운 광주 시내가 아니라
전남 영광 시장 통에 병원을 연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다.
시골 어르신들이 편하게 오갈 수 있게
버스터미널 바로 앞에 자리를 잡고
언제든 마음 편히 드나들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병원이 특별한 또 한 가지,
바로 오래된 '중고' 직원들~
12년째 일하고 있는 물리치료사, 박재중 씨(51)는
해영 씨의 든든한 동료.
또 응급구조사로 인연을 맺었던 박영희 씨(40)는
8년 전부터 접수부터 병원 살림까지 도맡고 있다.
여기에 매일 출퇴근을 함께 하는 어머니 박순화 씨(82)는
해영 씨 병원 바로 옆 약국의 약사다.
모두가 해영 씨의 '천군만마' 같은 이들이다.


# 한 곳쯤 이런 병원이 있으면 좋겠어~
“새벽 첫 차를 타고 온 환자들이
병원 문 열기도 전부터 추운 데서
기다리는 게 마음에 걸려 아예 병원 문 열쇠를 환자에게 줬어요.”
그러다 보니, 환자들은 주인도 없는 병원에 들어와
주인처럼 불을 켜고 침대를 데우고 진료실 청소를 한다.
급기야 병원 주방에서 아침밥을 안치고 김치찌개를 끓였다.
아침밥을 못 먹고 오는 병원 직원들 먹으라고
'어머니'의 마음으로 차려주신단다.
동치미가 잘 익었다고 김치통을 들고 와
해영 씨(54)에게 다짜고짜 맛을 보라는 할머니.
이쯤 되면 환자들이 몸이 아파서만 오는 게 아닌 듯하다
밥은 먹었는지, 별일 없는지,
그저 사랑방 드나들 듯이 오는 게 아닐까 싶은데...
안부를 나누고,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이곳은
분명 좀 '이상한' 진료실이다.
한 번쯤 가보고 싶은 해영 씨의 이상한 진료실로 가본다.


1부 줄거리
환자를 위한 병원을 만들겠다며
영광에 개원한 원장, 해영 씨.
병원을 내 집처럼 돌봐주는 환자들 덕분에
오늘도 병원은 평화롭게 흘러간다.
'엄마, 아빠'하며 환자들을 정성껏 진료하는 해영 씨.
직원들의 병원 사랑도 해영 씨 못지않은데,
환자들은 그런 마음을 아는지
각종 음식을 가져와서 밥도 차려주며,
병원 식구들을 챙긴다.
해영 씨의 집.
혼자 사는 집이라 온기가 부족한데...
간단한 집안일을 마친 해영 씨는, 곤히 잠에 들고
다음날, 평소와 같은 병원.
한 손님이 나물을 팔아 달라며 병원에 찾아왔다!


연출 : 박중언
글 :  서지숙
조연출 :  이가람
취재작가 :  김지영

두아들의 아빠,이국종 교수님의 모든것 입니다(아들아빠 이국종, 인간이국종, 의사이국종...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 외상센터 시스템의 부재와, 그 미흡한 시스템을 개선시키기 위해 온몸을 내던졌던 .. 이국종 교수님에 대해 알았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외상센터 체계는 굉장히 굉장히 미흡해서.. 혹시나 큰 사고가 났을때 병원으로 실려가는 도중에 구급차 안에서 죽을 확률이 굉장히 높기 때문이지.. 너무 슬픈현실이야..

그래서 외상센터 의사분들 사이에서는 구급차는 '움직이는 관이다'라는 말까지 있을정도야.

다른나라에서 사고를 당했다면 살수있었을텐데.. 우리나라에서는 교통사고 등등 외상사고를 당한 환자들을 받아주는 병원 찾다가 끝내 사망해버리는 이 현실.. 모두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글을 써봤어.

어..우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나도 이국종 교수님에 대해 안지 얼마 안됐어! 몇달전에 실시간검색어에 '북한병사 귀순'이 있어서 클릭하다가 수술을 집도하신 분이 이국종 교수님이라는 걸 알고 '아 그렇구나 꼭 살려내셨으면 좋겠다..' 했을뿐이야.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생각나더라.. 그 교수님에 대해 좀 찾아보고 싶더라고.

그러다 ebs에서 방영했던 명의 '운명의 1시간 중증외상센터

' http://www.ebs.co.kr/tv/show;jsessionid=0CdJjXSbFtpbdyu3rHv4mX7UWK4OLgtYbkV2sZBObQKtLcsyMarMsAYawE6axEP6.enswasp01_servlet_engine2?courseId=BP0PAPG0000000014&stepId=01BP0PAPG0000000014&lectId=10144896 (안본 사람 꼭 봐봐 시간루팡..)

이걸 보고 좀 많이 충격을 받았어.. 일단 외상센터라는 명칭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기도 하고 .. 이런 의사분이 존재한다고? 하는 경외감이랄까? 그런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끼다가 홀리듯 교수님에 대한 인터뷰 내용, 뉴스기사등을 다 찾아보고 멍~해졌지..

정말 머리를 해머로 맞은것 같았어. 지금껏.. 이분에 비하면 지극히도 평탄하게 살아왔던 내가 참 부끄러웠고,, 정말 무한한 존경을 보내게 되더라..그 후 검색을 해봤는데, 외상센터에 대해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한숨만 나오더라.. 우리나라가 개판인줄은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 개판이더라 ㅋㅋ..

근데 교수님은 그 속에서 혼자 외롭게 싸워오셨다는게 .. 내가 뜨거운 감동을 받았던 부분이였어. 만약 내가 그런상황에 놓여졌다면, 나를 알아주고 인정해주고 격려해주는 그런곳으로 반드시 떠났을테니까.. 교수님을 비롯해서 아주대 외상센터 의료진들은(간호사분 의사분 모두 포함) 몇번이나 떠날수있었음에도.. 캐나다에서 이직 제의를 받으셨던 분까지 있으셨는데도 그 열악한 자리를 꿋꿋하게 지켜오셨다는게 정말 감동이였던 것 같아.

그 뒤로 나처럼 외상센터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커뮤니티에도 올리고.. 청와대 민원도 쓰고 국회의원 두분께 문자도 보내보고 답장도 받아봤어..

<인간 이국종 , 대한민국 외상외과 의사 이국종 이야기> 시작합니다.

' 나는 외상외과 의사였다. 그들을 살리는 것이 나의 업이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꾸 내 눈앞에서 죽어나갔다. 싸우면 싸울수록 내가 선 전장이 홀로 싸울 수 없는 것임을 확인하는 것 뿐이였다. 필요한 것은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알려 하지 않아서 알 수 없었다.'(이국종 교수님 비망록 中)

 

<이국종 교수님은 어떤 분이시죠..? 와 관련된 사진,기사들..>

 

 

<인터뷰 중..>

◆ 이국종> 버틸 수 있는 근거가 없죠. 왜냐하면 민간기관에서는 저희가 수익을 내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사실 남아 있는 사람이 없다 보니까 이렇게 많이 힘들어졌죠. 하여튼 분명한 생각은 이 일이, 저희가 얼마나 이걸 지속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저희가 했던 걸 글로벌 스탠다드에 그대로 맞춰서 해서. 최악의 경우에는 저희가 사멸하고 나더라도 저희가 했던 진료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은 굉장히 강하게 있습니다.

◇ 김현정> 그러니까 그 부족한 것들을 내가 꼼꼼히 기록해서 후세에도, 후학에게 남겨야겠다는 사명감 같은 게 있으신 거군요?

◆ 이국종> 화석 같은 겁니다, 그러니까. 옛날에 이런 사람들이 우리 한국에 있었구나. 그리고 이런 게 한국에서도 하면 되기는 됐었구나. 조금이라도 이렇게 본받을 만한 뭐가 있었다는 게 후세에 남아야지 그냥 뭐 아무것도 없이 그냥 단순히 오늘, 오늘 때워넘기려고 현실적으로 타협을 해 버리면 사실 뭣 하러 그걸 하겠습니까? 저도 나이가 있고 그런데. 더 이상은 이걸 할 이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 김현정> 지금 화석을 새기는 기분으로. 그러니까 후세에 뭔가 보물을 남기는 기분으로 그런 사명감으로 일하고 계시는 거예요. 그러면 집에는 가세요, 이국종 교수님?

◆ 이국종> 사람이 많이 부족합니다.

...

그렇게 된 환자분들 중에서 죽을 힘을 다해서 밤새 수술하고 그리고 한두 달, 석 달 동안 중환자실에서 버텨가지고 거의 다 좋아졌다. 이제 일반병실 가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해서 약간 마음을 놓고 있는 환자가 있는데 그런 환자들이 갑자기 엉뚱한 합병증이 발생하면서 갑자기 피가 뿜어져나오면서 돌아가시거나 생명을 잃어갈 때. 그때는 정말 미칠 것 같습니다. 정말 괴롭습니다, 그럴 때는. 그런 환자분 한 분, 한 분이 다 남습니다, 머리에.

◇ 김현정> 잊혀지지 않아요, 그런 분들일수록?

◆ 이국종> 그렇습니다.

원문보기: 이국종 교수님 인터뷰..

http://www.nocutnews.co.kr/news/4885940#csidxce6230109af0e418bd6460d42b6955c

 

 

 이국종 교수님과 외상센터 의료진들은 이렇게 꾸준히 레펠훈련을 받고 계십니다..

참고로 헬기를 탈때마다 '사고가 발생시 국가로부터 손해배상 청구를 하지않겠다'라는 서약서를 쓰고 타셔야 한답니다.. 그만큼 위험한 일이지요..

 

 

이국종 교수님의 어머니께서는 항상 '보잘것 없는 네가 남의 인생에 이정도 임팩트를 줄 수 있다느것에 감사해라' 라고 하신대요..!

 

 수술이 끝난 수술방입니다. 얼마나 다급했는지 느껴지는 사진이예요.

 

세상에 빚이 많다고 생각하셔서 잘 웃지 않으신답니다..

 

 하..

진짜 이거 보고 너무 화나고 어이없고 슬프고 애통하고.. 그렇게 환자들을 위해 본인 사비에 목숨까지 걸어가며 헬기타시는 분이.. 수술중에 동료의사들의 연판장(어떤 의견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개개인의 서명을 담은 그런 문서..)을 받으셨다고 하십니다..ㅠㅠ

정말 저때의 심정이 오죽하셨을까요..?

 

뉴스를 보다가 화면을 캡쳐해봤어요.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요..

 

 오죽하셨으면 이런말씀 까지 하셨을까요..ㅠㅠ

 

의사들의 세계에도 존재하는 학력주의..

의사가 학력으로 환자 치료하나요? 실력으로, 마음으로 치료하는거 아닌가요..? 정말 중요한걸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듯하네요..

 

 환자를 죽을힘 다해서 치료하고 수술했음에도, 안타깝게 사망했을경우.. 그 치료 , 수술비용을 누구한테 내민다? 치료한 의사에게^^ .. 하 한숨만 나와요 진짜 이놈의 시스템 !!!

 

2011 년, 이때 석선장님을 에어앰뷸런스로 한국까지 이송하는 비용이 4억 4천이였대요., 근데 그걸 외교부가 미적대자 교수님이 너무 답답해서 자기가 내겠다고 하심.. "나중에 정부가 줬겠지..?" 아뇨 . 비용은 한진해운이 가입한 선박회사에서 처리해줬는데.. 그 과정에서 교수님은 수차례 스위스 에어앰뷸런스 회사로 부터 빚 독촉을 받았다고 해요.. 너무 힘들어하셨다고 동료의사분이 인터뷰하셨어요.

7개월에 8억... 자신이 살린 환자들이 겨우 살아났는데. 그 힘든 치료과정 수술과정을 다 견디고 견뎌서 마침내 소생했는데.. 의식이 돌아오자마자 병원비를 걱정해야 되는 현실에 너무 마음이 아프셔서 자신이 다 떠맡으심..

 

 

 이외에도 헬기 날아가는데 김밥에 모래들어갔다고 민원넣은 인간들도 있어요.......

<이국종 교수님을 괴롭힌 시스템의 문제들>

왜 환자를 치료하면 할수록 병원이 적자인지 여실히 드러나 있는 그런 글들입니다.

 

 

 

 

후.. 무거운 주제들. 그런데 ,. 대한민국에서 살고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갈,, 우리들이 꼭 알고있어야 할 내용들입니다. 더 이상 귀찮다고 외면하는건 안되지 않을까요?

 

 

 

 

 

 

정말 애통합니다. 이렇게 평생 환자만을 위해 애써오신분한테 갖가지 공격과 조롱을 하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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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사진 3장은 국민청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듣고 하신 말씀이십니다.

 

 

 

 버티시겠다고 하시네요..ㅜ

<아래 사진들은 언제나 무표정을 짓고 계셔서 차가워 보이시기까지 한 교수님의 성격과 인성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글들입니다. 정말 따뜻한 글이예요!>

 

되게 쑥쓰러워하시는 모습도 있으시네요 ㅎ

 

사고로 장애가 생기신 분들이 지원받을수 있는 장소도 직접 알려주신다고 해요..! 이런의사분이 어디 계실까요 정말 .

이번에 귀순한 25살 북한병사..! 에 대한 이야기!

진짜 보고 감동받음.. 교수님의 인성이 너무 보여서.. 시종일관 환자 안정 + 귀순병사 배려하는 마음..

혹시나 귀순병사가 뉴스나 이런곳 보면 온통 자기관련 이야기에다가.. 북에 계신 부모님 안위가 걱정될까봐.. tv채널을 영화랑 스포츠, 음악채널로 고정해 놓으셨대요..

그리고 퇴원하면 자기랑 캐치볼 하자고 하셨어요 ㅎㅎ

 

 

 

ㅋㅋㅋ 교수님이 귀순병사한테 너 몸에 우리국민 피가 1만 2000cc(3사람 분량)가 들어갔다고 회복되고 사회생활하면 세금 많이 내야한다고 그게 바로 '혈세'라고 ㅋㅋㅋ 하심

 

 ㅇㅣ건 기자들이 심문 언제 받을 수 있냐 하니까 말씀해 주심..

이국종 교수님이 귀순병사에게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얼마나 조심스럽게 하시는지 보여주는 기사입니다.

 

이국종 교수님 웃었을 때!! : 북한병사 의식깨어났을 때 ㅎㅎ

 

이거 희귀짤..!! 이국종교수님 해군일때!! 완전 젊고 어두운 지금과는 달리 환해보이시고.. 와....

원래 의대 포기하시려 하셨대요.. 그런데 입대하고나서 거기 계신 분들이 왜 포기하려 하냐고 좋은말씀 많이 해 주셔서 다시 의학도의 길을 가실 수 있었다고 합니다..!!!

 

 < 이국종 교수님 웃는 모습 보려면 백만년걸린다는 바로 그 웃음 모음!!>

 

 

 

 

뀨..?

 

 

저도 이국종 교수님 결혼 안하셨는줄 알았는데!! 놀랄만한 사실..!! 중학생인 두명의 아들들이 있으시대욧!!!

집은 병원 근처시라고 하시더라! 그래도 일년에 4번간다는게 함정..........

그리고 저 다리미대 사진은 집에 가실 시간이 없으셔서 사무실에서 직접 와이셔츠 이런건 빨고 다려서 입으신대요...

 

 

이 사진을 맨 마지막으로 정한이유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한다는겁니다... 이런 현실을. 앞으로도 많이 마주하게 될 현실들이 있을텐데 그런것들도 그렇고.

제가 비록 이국종 교수님을 정말 너무 존경해서 이렇게 글을 쓴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다 우리가 당할 일들일수도 있으니까.

40대 이하 사망률 1위는 바로 외상이기때문이죠. (교통사고, 추락 등등 포함)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우리의 가족과 지인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런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문제해결에 대한 의견을 촉구하여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읽어줘서 너무너무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 마지막으로 글 하나만 올리고 갈게요!

누구에게나 인생은 어려움의 연속이지만 그것을 헤쳐 나가다 보면 길이 보인다. 완벽한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그러한 과정에서 훌륭한 동료를 만나는게 우리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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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치 않은 세상, 앞으로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껏 그랬든 내가 세운 가치를 따르며 오랫동안 발자국을 남기고 싶다. 세상 떠나는 날, 내가 관 속에 가지고 갈 것은 그동안 치료한 환자의 명부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내가 사망할 경우 그동안 치료했던 환자의 명부를 같이 묻어 달라고 할 생각이다...

-이국종-

+)참고로 이건 후원링크예요.. 이 링크를 올리는 이유는 액수가 얼마가 되던간에, 이렇게 응원해주는 사람이 많구나 ..하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려드리고 싶어서 올리는겁니다...

이국종 교수님 개인 계좌입니다!!
아주대병원에서 오픈해주셨어요!!!
이국종 교수님께 곧장 후원하실 분들은 이 링크에 접속하여 주시면 되셔요!
감사합니다 모두들
우리모두 훗날 우리가 겪게 될지도모를 외상센터에 지속적인 관심 가져봅시다!!

http://ts.ajoumc.or.kr/EP/View.aspx?smpc=DM00040003&ssc=0004&ssgc=DM&mc=DM0004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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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종교수님을 뱃지로 후원하는 링크입니다.

https://7pictures.co.kr/products/goldentime

좀전에 본 기사 추가..

-변호사 대상 강연을 들으니 의료소송에서 사비를 들인 사연도 있다는데.
 
한 번은 9살 어린이가 버스에 치이는 사고로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아이와 부모님은 아이가 거의 다 나을 때쯤 갑자기 병원에서 도망쳤다. 버스회사가 병원비를 내야 하는데 병원 책임이 크다는 이유로 8000만원 상당의 소송을 제기했다.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MRSA)이라는 의료 감염을 초래해 병원비가 많이 나왔다는 것이다. 

다행히 최선을 다해 치료를 했다고 법원이 중재해 버스회사가 병원비를 갚도록 하는 화의(和議)가 선언됐다. 대신 의료 감염에 쓴 항생제 비용 250만원을 내라는 명령이 나와 사비로 냈다. 환자 상태가 좋지 않아 감염을 막느라 항생제를 썼을 뿐이었다. 그래도 이쯤해서 끝난 것이 고마웠다. 250만원이 큰 부담은 아니었다. 환자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도망칠 정도로 살아줘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외상센터를 지원하자는 국민 청원이 20만명을 넘었다. 청와대가 관심을 가지면 달라지지 않을까.
 
“국민들께 너무 감사하다. 하지만 이런 국민 관심은 3개월이면 사라질 수 있다. 이는 석 선장 때 경험했다. 그러다 보면 정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 직접 관심을 가지면 정책 실행이 빠르긴 하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직접 보건복지부에 외상센터 설치를 지시했다. 그때 전국에 외상센터가 설치되면서 실무진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외상센터는 단순히 하드웨어를 설치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예산을 나눠 갖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서 일할 의사와 간호사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 교수는 연 150억 원을 들여 운행하는 닥터헬기가 무전 장비를 갖추지 못해 지상에서 대기하는 의료진과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주고받아야 하는 현실도 토로했다. 그는 일본의 항공 의무팀이 헤드셋과 스피커폰으로 자유롭게 지상과 통신하는 동영상을 보여준 뒤 “한국은 닥터헬기 도입 후 7년째 몇백만 원짜리 무전기를 달지 않고 있다”며 “예산을 늘린다고 능사가 아니다. 어떻게 쓸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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