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V 생생정보’ 떡볶이 만드는 엄마는 슈퍼우먼 이경애, 대전 싱글벙글떡볶이 중앙시장 맛집 위치..주말농장 채소 자급자족 생생현장
"기다릴게요" 떡볶이 포차 사장 경애씨의 특별한 인사
"기다릴게요."
헤어지는 연인의 애틋한 마지막 말을 이곳에서 들을 줄은 몰랐다. 고개를 드니 국자로 떡볶이를 휘휘젓는 사장의 환한 웃음이 눈에 들어온다. 대전 중앙시장 입구의 '싱글벙글 떡볶이' 이경애(45) 사장.
푸짐한 인심, 언제봐도 환한 웃음, 남다른 인사말로 이미 유명세를 얻고 있는 그다.
그가 운영하는 싱글벙글 떡볶이는 대전맛집 관광을 오는 이들에게 필수 코스다.
이씨의 인사말에 계산을 하던 손님은 다시 한 번 그와 눈을 마주친다.
"날 기다린다고? 허허." 멋쩍으면서도 왠지 기분 좋은 듯, "알겠다"는 대답을 남겼다.
"계산이요. 떡볶이 9개랑 튀김이랑…." 한쪽에 있던 대학생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떡 2개를 빈 접시에 채워준다. "여기 더 잡숴요. 오늘같이 추운 날은 배를 든든하게 해야돼."
▲ 이경애(44) 싱글벙글 떡볶이 사장은 하루하루가 희망을 좇는 삶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손님들에게 "기다린다"는 인사말을 건넨다. 사진=강은선 기자
기다린다는 건 한쪽이 매달리는 듯한 어감이다. 그런데도 이 말은 왜 그에게 인사말이 됐을까.
"손님들이 다 궁금해 해. 뭘 기다리느냐고. 농담으로 부담된다는 손님도 있었지. 그런데 생각해봐. 안녕히 가세요라는 말은 왠지 서글프지 않어?"
지적장애 1급인 큰 아이를 재활원에 보낸 날, "안녕히 가세요"라는 원장의 말에 이 씨는 집에 돌아와 이틀 밤낮을 울었다. 미안했다. 속상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듣게 된 인사말은 다신 오지 말라는 듯 들렸다.
같은 말이라도 경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고 그는 말했다.
푸근한 인심도 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어쩌면 한 번도 넉넉했던 적이 없어서 내가 '가진 것'에 대해 어색해서 그럴 수도 있지. 내가 남보다 더 잘사는 것이 왠지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해. 아이들이 아퍼서 그 마음이 더 커진것도 있고."
▲ 이경애(44) 싱글벙글 떡볶이 사장은 하루하루가 희망을 좇는 삶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손님들에게 "기다린다"는 인사말을 건넨다. 사진=강은선 기자
이씨가 3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어머니와 네 자매는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행상을 다니던 어머니는 중앙시장에서 노점을 했다. 어머니가 집을 비우면 네 자매를 서로 돌봤다. 운동회날도 행상을 나간 어머니는 도시락대신 생라면을 세 자매 가방에 넣었다. 초등학교 때에는 하교하면 시장으로 가 어머니가 업고 있는 동생을 데리고 집으로 왔다. 마을회관으로 가서는 연탄을 받아왔다. '열 살이면 세상을 알만한 나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그가 꼭 그랬다.
당시 70명이 넘는 '콩나물 시루'같던 교실은 오전·오후반으로 격주로 나뉘어 수업이 진행됐다. 오후반인 주는 집안일과 동생을 돌보느라 매번 늦었다. 친구들이 하교할 때 이씨는 나머지 공부에 해질녁이 돼서야 집에갔다.
그럼에도 반대표로 달리기 선수를 할만큼 체육은 자신있었다. 말재주도 있어 친구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좋았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야간 고등학교를 들어갔다. 재봉질로 옷감을 다듬는 한나절이 지나고 수업시간이 오면 피곤이 쏟아졌지만 그는 수업을 듣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라 채찍질했다. 그렇게 1년 여를 보내다 생산라인 조장이 됐고 동기들이 3년을 채우고 한 두명 떠났지만 그는 그곳에서 5년을 버텼다. 1988년, 회사를 나오며 모은 돈 1000만원을 어머니께 드렸다. 고졸이 갈 수 있는 곳은 생산라인 밖에 없다는 것에 좌절해 그는 둘째언니의 추천으로 섀시 공장 경리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남편을 만났다. 당시 포항제철에 다니던 남편과는 만난지 6개월만에 결혼했고 그 해 첫째를 낳았다.
제왕절개로 낳은 아이는 참 얌전했다. 젖을 달라 보채지도 않았고 밤낮 울지도 않았다. 젖 먹일 때도 흔들어 깨울 정도였다. 하지만 5개월이 넘도록 엄마와 도통 눈을 마주치려 하지않았다.
아이의 뇌에 문제가 있다는 걸 그 때 알았다. 지적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병원에 찾아가 항의도 해봤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의사는 "기댈 수 있는 건 모성애 뿐"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6개월이 넘어가면서 언어·특수·물리치료에 나섰다. 한달에 100만원 가까운 돈이 들었지만 3년동안 하루도 거른 적이 없었다. 남편의 월급은 들어오는 대로 나갔고 신용카드만 10개를 만들어 매달 돌려막기를 했다. 어린이 집에서 시간제 교사로 근무하던 이씨의 월급까지 합쳐도 무리였다.
▲ 이경애(44) 싱글벙글 떡볶이 사장은 하루하루가 희망을 좇는 삶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손님들에게 "기다린다"는 인사말을 건넨다. 사진=강은선 기자
행복을 찾으려던 찰나 그의 앞에 나타난 건 막다른 길이었다.
"결국 이 길의 끝을 모르고 달리기만 한 내가 바보같다는 생각에 애가 끓었죠. 그럼에도 아이를 내 손으로 건강하게 해주고 싶었어요."
IMF가 터지면서 채무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가족이 상의한 끝에 큰 아이를 재활원에 보냈다. 하루라도 함께 있으면 달라지겠지하는 마음이 컸지만 체계적인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애정 그 이상이 필요했다. 아이를 재활원에 맡기고 돌아서는 그 날 왠지 모르게 죄책감이 들었다. 큰 아이를 재활원에 보내고 나서야 둘째와 셋째가 눈에 들어왔다. 똘망똘망하던 셋째는 커갈수록 다른 아이보다 뒤쳐졌다. '늦된아이'였다. 큰 아이만 신경쓰다보니 성장에 필요한 자극을 제때 주지 못해서였다. 셋째도 결국 장애가 생겼다.두 자녀가 장애를 얻은 것에 이씨는 막막했다. 모든 게 자신의 탓처럼 여겨졌다.
길가에 핀 꽃이 꺾여도 자신이 지은 죄 때문이라 생각했다.
한파는 한 번에 몰아쳤다. 그러던 2001년 친정 어머니한테 중앙시장 근처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지칠대로 지친 그에게 어머니는 시장 한켠의 자리를 가리켰다. 그러고 떡볶이 장사를 해보라고 독려했다. 자리 옆에는 시장통에서 5-10년해온 떡볶이 포장마차가 줄지어 있었다. 단골만 찾는 떡볶이 포차 사이에서 그는 다시 한 번 아이들을 떠올렸다. 밤새 양념을 만들고 맛봤다. 하루종일 손님과 대화를 해 집에 가면 입이 부르틀 정도였다.
장사하기 위해 들여오는 양만 하루 30만원어치인데 파는 것은 기껏해야 8만원 조차 안됐다. 파는 떡볶이보다 버리는 게 더 많았다. 남과 다른 경쟁력을 갖춰야 했기에, 그는 오전 7시에 나왔고 24시간 남편과 교대로 돌아가며 떡볶이를 팔았다. 그러던 차에 오뎅을 서비스로 주는 포장마차로 입소문이 나면서 단골이 잡혔다.
장성한 대학생이 오면 큰아들 같아서 떡볶이 값도 받지 않고 포장까지 해서 보내준 적이 수백번.
"장사는 돈벌려고 하는 건데 이렇게 해서 뭐가 남냐"는 질문에 "내가 남에게 더 잘해줄수록 아이들이 건강해지더라"로 이씨는 답했다.
▲ 이경애(44) 싱글벙글 떡볶이 사장은 하루하루가 희망을 좇는 삶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손님들에게 "기다린다"는 인사말을 건넨다. 이씨가 가장 좋아하는 'V'자 포즈. 사진=강은선 기자
이 씨는 한 달에 한 번씩 장애인복지시설에 봉사활동을 다닌다. 복지관에 재정·음식 후원도 아낌없이 한다.
옆에서 이것저것 묻다 발가락 끝이 얼어 느낌이 없어질 때쯤, 한 무리의 대학생들이 몰려왔다.
"이모, 기다린다고 해서 또 왔어요. 추운데서 만날 우리 기다리실까봐."
손님과 사장이 함박웃음을 짓는다.
"내 하루하루는 건강하게 잘 살라고 선물받는거야. 우리 아들이 선물로 준 하루야. 슬픈 걸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겠지, 그 희망으로 사는 하루."
출처 - http://www.daejonilbo.com/news/webzines.asp?pk_no=1100315
‘2TV 생생정보’ 1321회 5월 26일 수요일 취재 연락처
<엄마는 슈퍼우먼>
■ 떡볶이 만드는 엄마 - 상호 : 대전 싱글벙글떡볶이
위치 주소 : 대전광역시 동구 중앙로 200-1 대전중앙시장 싱글벙글떡볶이
[대전 중앙시장 맛집] 싱글벙글 떡볶이
<생생현장>
■ 주말농장에서 채소 자급자족
‘2TV 생생정보’ 떡볶이 만드는 엄마는 슈퍼우먼 이경애, 대전 싱글벙글떡볶이 중앙시장 맛집 위치..주말농장 채소 자급자족 생생현장